2024년, 식품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우유가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다시금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유튜브나 일부 자연치유 콘텐츠에서는 우유 속 단백질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을 펼치며 부모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주장은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오해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해외 학술 논문과 최신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유와 자폐 사이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합니다.
1. 루머의 시작: 우유와 자폐의 연관성, 어디서 나왔나?
'우유가 자폐를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발점은 일부 부모들과 대체의학 지지자들 사이에서 공유된 개인적인 사례 보고였는데, 이들은 특정 식단 변경 후 자폐 아동의 행동이 개선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우유 단백질인 카세인(casein)과 글루텐(gluten, 밀 단백질)을 제거하는 'GFCF(Gluten-Free Casein-Free)' 식단이 일시적으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이 주장은 '장-뇌 축(Gut-Brain Axis)'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즉, 장에서 흡수되지 않은 펩타이드(분해되지 않은 단백질 조각)가 혈류를 통해 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자폐 아동의 소화효소 결핍, 장내 미생물 불균형 등과 연관되어 이러한 물질이 체내에 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과학계의 주류 입장은 다릅니다. 영국의 코크란 협회(Cochrane Collaboration)는 2010년 발표한 문헌 고찰에서 “GFCF 식단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일관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연구 샘플이 작고, 이중맹검(double-blind)이 적용되지 않았거나, 결과 해석이 주관적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 지적됐습니다.
결국, 이 이론은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지, 우유가 자폐를 ‘유발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반복 가능한 실험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이며, 이 기준을 충족한 연구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습니다.
2. 2024년 최신 연구로 본 과학적 입장
2024년 현재, 우유와 자폐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주요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보입니다: 우유가 자폐를 ‘유발’한다는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다. 오히려 GFCF 식단이 일부 증상을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이는 개인차이며 전반적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이 지배적 의견입니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 연구팀은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자폐 아동 120명을 대상으로 GFCF 식단의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해당 연구는 무작위 대조군 이중맹검(RCT)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6개월 이상 관찰한 결과, 행동 개선과 식단 간 유의미한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식단 변화 자체보다 부모의 기대심리나 환경적 요인이 행동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미국 하버드대학교 공중보건대학원은 2022년~2023년에 걸쳐 자폐 아동이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진행한 메타분석 연구를 통해 유사한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14개 국가에서 수행된 19개의 임상 데이터를 종합한 이 연구는 “일부 소화기 이상이 있는 자폐 아동에게는 일시적인 개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자폐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며, 영양 결핍의 우려도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들은 세계보건기구(WHO), 미국소아과학회(AAP), 유럽식품안전청(EFSA) 등 주요 보건기관의 권고와도 일치합니다. 이들 기관은 모두 우유와 자폐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부족하며, GFCF 식단은 치료법으로 권장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3. 식품 안전 이슈와 소비자의 역할
2024년의 식품 안전 이슈는 ‘식품 그 자체’보다도 ‘정보의 안전성’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건강 정보가 유튜브, 블로그, SNS 등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채 빠르게 확산되는 시대에서는 소비자의 정보 해석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우유와 자폐의 관계에 대한 루머 역시, 과학적 검증 없이 입소문으로 번지면서 부모들의 불안감을 자극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루머가 일단 확산되면, 나중에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여전히 불안 요소로 남는다는 점입니다.
소비자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갖고 건강 정보를 검토해야 합니다:
- 이 주장이 peer-reviewed 학술지에 실린 것인가?
- 해당 연구가 무작위 대조군, 이중맹검 방식으로 진행되었는가?
- 세계 주요 보건기관의 공식 입장은 무엇인가?
이 기준을 우유와 자폐 이슈에 적용해보면, 현시점에서 과학적 결론은 명확합니다. 우유는 자폐의 원인이 아니며, 카세인 단백질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일부 개인을 제외하면, 전 인구에게 해당 식품을 제한할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유는 칼슘, 단백질, 비타민B군 등 영양소가 풍부한 식품으로, 성장기 아동의 균형 잡힌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포'가 아니라 '근거'에 기반한 판단입니다. 인터넷 속 자극적인 정보 대신, 의학 전문가의 의견과 검증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식품을 선택해야 합니다.
2024년에도 우유는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자폐 유발이라는 주장은 과학적 기반이 부족한 루머에 가깝습니다. 식품 안전을 고민할 때 우리는 단순한 '먹지 말라'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 목소리의 근거와 신뢰성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건강은 사실에 기초한 정보에서 시작됩니다.